“성공보다 실패대책 먼저 세워”…25세 대학생은 그렇게 창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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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이 미래다 3부 / 나이 서른, 나는 사장이다 ② ◆

시대가 바뀌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기업을 골라 취업했던 무용담은 철 지난 유행가 가사다. 청년 창업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매일경제는 30대 청년 창업가 3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모두 1980년대생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외식업, 문화 콘텐츠, 패션 커머스 등 각자 업종이 다르고 회사를 키워 가는 방식도 다양했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창업은 힘들지만 해보라”고 권했다.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이유도 분명했다. 30대 사장들에게 일은 단순한 `노동`이라기보다 삶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 이건호 샐러디 대표

`성공하면 어떻게 하겠다`가 아니라 `망했을 때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부터 세웠다. 공동 창업자와 둘이 6~7년 열심히 일하면 빚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경기도 김포에 있는 할머니 집을 담보로 2억원을 대출받아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외식업도 청년 창업대출이 가능하지만 2013년, 그때는 안 됐다. 이건호 샐러디 대표(30)가 나이 스물다섯, 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때다.

`샐러디`는 샐러드 전문 프랜차이즈다. 창업 6년 만에 직영점 3곳을 포함해 38개 점포를 둔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지난해 연매출은 약 40억원. 창업은 이 대표가 대학 졸업반 때 결심했다.

“취업이 쉽지 않았어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에는 같은 과에서 3~4명 정도만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설사 대기업에 취직해도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보이더군요. 대기업에 들어가 40·50대면 나가야 하잖아요. 떠밀려 나가느니 일찍 `자영업`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 싶었지요.”

문과라 정보기술(IT) 창업은 한계가 있었다. 또 IT 창업은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자유롭게 경영하기 힘들고 투자자로부터 압박받는 것도 싫었다.

대신 샐러드 전문점을 창업 아이템으로 잡았다. 몸매를 관리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추세였다. 기존 샐러드 전문점은 프리미엄급인데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듯 비교적 싼 가격에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편안한 샐러드 전문점을 생각했다.

부모님은 창업을 반대했지만 강하게 말리지는 않았다. 식당을 운영하는 게 육체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이 대표가 조금 하다 접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먼저 친구 자취방에서 메뉴 개발부터 시작했다. 드레싱과 관련한 레시피를 찾고 만들어 봤다. 하루 매출이 80만원은 나와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었다. 샐러드를 하루 100개 이상은 팔아야 했다. “처음에는 3개월 동안 하루 10~20개밖에 안 나갔어요. 여유 자금이 점점 떨어져 갔죠. 희망은 사라지고 빚을 어떻게 갚을지 걱정이 가득한 시기였습니다.”

차분히 원인을 분석했다. 너무 카페 같은 분위기가 문제였다. 커피 주문만 있고 샐러드 주문은 적었다. 또 채소, 토핑, 드레싱까지 주문 과정이 복잡했다. “패스트푸드점처럼 인테리어를 바꾸고 대표 메뉴 8개 중에서 골라 먹을 수 있도록 메뉴도 단순화했습니다.” 인테리어와 메뉴를 바꾸니 신기하게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사업을 확장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가맹점 문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공적인 출발이었지만 몸은 힘들었다.

“창업 후 1년 동안 아침 6시에 나와 집에 들어가면 밤 12시가 됐습니다. 돈을 쓸 시간이 없으니 돈이 모이더군요. 지금은 직영점도 늘고 법인을 설립해 법인 대표로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월급은 제 또래 대기업 직원 월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창업한 것을 후회할 때도 있었다. 일하는 시간에 비해 수익률이 낮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을 때는 경영자로서 자책도 심했다. “중간에 직원 월급 줄 돈도 바닥이 났습니다. 월급도 못 주면 사업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샐러디 역시 다른 외식업처럼 최저임금 인상의 폭풍을 맞았다. 매장 임대료도 계속 오르고 있어 가맹점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고민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의 외식업 창업에는 기회도 많다는 게 이 대표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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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36)는 마포구 연남동 단독주택 반지하에서 첫 사업을 시작했다. 66㎡(약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전세금 6500만원으로 주거와 사무공간이 동시에 해결됐다. 홍 대표는 한양대 건축학과를 나왔다. 전공을 살려 세 겹으로 깔려 있는 장판도 걷어내고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

창업은 대학원 때 경험한 것이 많이 도움이 됐다. 홍 대표는 KAIST 대학원에서 문화기술학을 공부했다. 여러 전공의 학생이 모여 융합적 사고를 하는 융합대학원이었다. 도시 프로젝트를 하는 기획사를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마침 스마트폰이 도시관 패턴을 바꾸고 있을 때였다.

마을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힘들었다. 기획자·디자이너 유전자는 있지만 비즈니스 개념은 부족했다. 경영자는 비즈니스적으로만 사고해야 하는데 경험이 많지 않으니 시행착오가 잦았다. 다만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하는 기획력이 도움이 됐다.

“연남동에는 게스트하우스가 많았어요. 게스트하우스 로비 공간을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로 `숨은 연남 찾기` 프로젝트를 했어요. 게스트하우스 10개를 연결해 쿠킹 클래스도 열고 에어비앤비도 후원했는데 결과가 생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실패한 원인을 곰곰이 분석해봤다. 비가 많이 왔고 마케팅도 안 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운영상 문제점이 더 컸다.

“시골 마을이 아니니 포스터만 붙이면 사람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생각보다 운영 비용이 많이 들었어요. 경험이 부족했죠. 사람 모집이 안 될 수도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든 사람을 모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능력보다 일을 크게 벌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을 단위로 묶어 행사를 하는 시도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창업 자금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파트타임으로 모은 돈과 지인에게서 빌린 돈을 합쳤다. 전세금을 포함해 창업 비용은 7000만원이 들었다. 한국관광공사 관광벤처 사업으로 2014년 지원금 3000만원을 받아 지금도 관광공사와 많은 협업을 하고 있다. 이후 2015년 네이버에서 5억원, SBA액셀러레이팅센터에서 1억원을 투자받았다.

사업 영역은 연남동 단독주택을 참기름 카페로 바꾼 `연남방앗간`, 택시회사 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꾼 `연남장`과 같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 비즈니스가 핵심이다. 또 연남방앗간에서 파는 참기름, 로컬 제품, 책 같은 프로덕트 판매가 있다. `연희걷다` `연남위크`와 같은 동네 프로젝트를 하는 지역 마케팅 프로젝트를 통해 콘텐츠 발굴과 함께 기존 비즈니스와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 수익사업화한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통해 모인 콘텐츠는 디지털로 데이터베이스화한다.

“어반플레이가 무슨 회사인지를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일본에는 지역을 관리하는 에어리어 매니지먼트사가 있어요. 연예기획사처럼 동네를 기반으로 기획사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대표와 만나 서로 배우고 정보를 교류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사업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윤자영 스타일쉐어 대표

스타일쉐어는 10· 20대들이 일상 속 자신의 옷이나 신발, 액세서리를 착용한 후기를 올리거나 화장 노하우를 찍어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시작했다. 2017년 기존 SNS에 커머스를 결합해 쇼핑까지 가능하게 됐다. 소위 `Z세대`의 쇼핑 트렌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여성 패션 커머스로 평가받고 있다.

윤자영 스타일쉐어 대표는 올해 31세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과 07학번으로 이미 창업 9년 차다. 2010년 대학 강의에 온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가 비즈니스 모델을 보고 지분 10%에 2000만원을 투자했다. 창업은 선후배 등 6명이 함께 시작했다. 지금은 직원이 70명. 윤 대표는 “10~30대를 아우르는 패션 커머스를 만들 것”이라며 “2020년 거래액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당차 보이는 그에게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느냐`고 물었더니 “매일매일이 위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창업 후 5년간은 비즈니스 모델이 안 붙은 플랫폼을 운영했는데 투자자금이 중간에 떨어져 월급을 주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회사가 커지면서 조직 구성원들과 `비전`을 공유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서로의 일이 바쁘다 보면 회사가 왜 이런 걸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스타일쉐어는 매주 월요일 전 사원이 모여 정보를 공유한다. 회사 내 10개 팀이 모두 발표를 해 다른 팀의 소식을 듣는 기회도 된다. 윤 대표는 “스타일쉐어는 자율출퇴근제, 재택근무를 채택하고 있지만 월요 미팅에는 모든 직원이 꼭 참석할 것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윤 대표의 업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그에게 일과 삶은 양립이 아니다. 일이 즐겁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야 삶도 행복하다고 믿기 때문에 회사도 구성원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복지나 환경을 갖추어 가고 있다고 했다.

윤 대표는 “워라밸이란 말을 믿지 않는다. 일이 라이프고, 라이프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에 대해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일에 대해 피해자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일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면서 “일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자기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스타일쉐어에는 다른 일반 회사에 비해 창업 경험이 있는 직원이 많다. 윤 대표는 “큰 회사에서 안전하게 일한 사람들과 창업을 통해 어떤 일을 A부터 Z까지 다 해본 사람들은 다르다”면서 “창업자는 삶을 바라보는 눈이 다르다. 자기주도적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김기정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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