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불어닥친 ‘마라 열풍’ 매워도 멈추지 ‘마라’ 얼얼한 매운맛에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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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중 마라 농도가 떨어졌어. 마지막으로 마라탕을 먹은 지 무려 48시간이나 지났다고.”

점심 메뉴 선택권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마라가 무엇인데? “요즘 20대 사이에서 ‘마라탕’ 인기가 말도 못한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심지어 모든 재화·서비스 가격을 ‘마라탕값’에 견줘 말할 정도라고. ‘가격이 0.5 마라탕인 것치고는 학식 맛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식이란다. 이끌려 간 강남 모 마라탕 음식점 문 앞에는 장사진이 펼쳐져 있다.

오후 1시 30분에 그 지경이니, 점심 피크타임 대기 시간은 더 볼 필요도 없을 듯하다.

대한민국이 매운 ‘마라맛’에 빠졌다. 마라탕 음식점이 하루가 다르게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식품업계에서는 마라소스를 활용한 신제품을 내놓는 등 저마다 ‘마심 잡기’에 나섰다. 아직 마라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걱정하지 ‘마라’. 2019년 한국에 불어닥친 마라 열풍의 현상과 원인에 대해 상세히 알아봤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매운맛’

▷중국 사천서 건너온 향신료에 매료

먼저 마라의 정체부터 짚고 넘어가자.

‘마라(麻辣)’는 중국 사천 지방의 전통 향신료다. 원래는 습한 기후에 음식이 부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하던 재료다. 한자를 뜯어보면 어떤 맛일지 대충 감이 온다. 마는 ‘저릴 마(麻)’, 라는 ‘매울 랄(辣)’ 자를 쓴다. 그야말로 입이 저릴 만큼 ‘얼얼한 매운맛’이라는 뜻이다. 마라 향신료에는 육두구, 화자오, 정향, 후추, 팔각 등이 들어간다. 맵고 자극적인 맛을 낼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특히 ‘산초’로 알려진 화자오는 사람들 입을 마비시키는 원흉(?)이다. 한 훠궈 전문점에서 만난 직원은 “기본적으로 매운맛을 선호하고 또 잘 먹는다는 한국인도 마라에는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마라의 매운맛은 한국 매운 음식, 즉 마늘과 고춧가루가 주는 이른바 ‘알싸한 매운맛’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생소한 맛에 거부감을 보이는 이도 없잖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이 더 컸던 듯싶다. 기존에 없던 독특한 매운맛이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모양새다. 그중에서도 ‘마라탕’ 인기가 뜨겁다. 마라탕은 사천식 샤브샤브에서 변형된 요리로 중국 샤브샤브인 ‘훠궈’와 비슷한 음식이다. 훠궈처럼 고기 등 재료를 육수에 담가 샤브샤브처럼 먹기도 하지만 원하는 재료를 골라 담아 한 번에 조리하는 마라탕도 있다.

높은 관심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빅데이터 기반 맛집 추천 서비스 ‘식신’에 따르면 마라탕 검색량이 최근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마라탕 검색량은 3만5955건에 달했다. 2년 전인 2017년 같은 기간 검색량(3264건) 대비 11배 이상 증가했다. 다른 마라 요리에 대한 관심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늘고 있다. 마라소스에 고기, 해산물, 버섯 등 각종 식재료를 자유롭게 넣어 볶아 먹는 ‘마라샹궈’ 검색량은 같은 기간 12배 늘었다. 민물가재 ‘롱샤’를 마라소스에 넣고 여러 야채들과 함께 볶은 ‘마라롱샤’도 8배 증가했다. 서양민 식신 콘텐츠사업팀장은 “2017년만 해도 더 높은 검색량을 보였던 ‘훠궈’를 2018년 이후 마라탕이 역전해 현재는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마라 관련 키워드는 영화 ‘범죄도시’ 개봉 이후 검색량이 급증했다. TV나 미디어 노출도 마라 인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식품·유통업계도 ‘마심 잡기’

▷가맹점 우후죽순…마라치킨 ‘인기’

백문이 불여일견. 요즘 ‘마라탕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에 직접 가보면 마라의 뜨거운 인기를 체감할 수 있다. 점심·저녁을 불문하고 ‘혈중 마라 농도’를 높이기 위해 매장을 찾은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서울 역삼동 ‘라공방’, 대림동 ‘봉선마라탕’, 자양동 ‘라화쿵부’, 동선동 ‘애정마라샹궈’ 등이 SNS와 맛집 사이트 상위권에 오르내리는 대표적인 맛집이다.

창업 열기도 뜨겁다. 마라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 프랜차이즈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마라 프랜차이즈 중에는 ‘라화쿵부’ 매장 수가 가장 많다. 올해 오픈 계약 매장까지 더하면 그 숫자가 80개에 달한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증가세다. 지난해 말까지는 직영점 3개를 포함해 전체 매장이 35개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45개 넘게 증가했다는 얘기다. 한 달에 매장이 10개씩 늘어나는 추세다. 이 밖에 ‘라공방’ ‘하오판다’ ‘피슈마라홍탕’ 등도 가맹사업을 통해 점포를 늘려가는 중이다.

기존 사천음식 전문점도 덩달아 즐거운 요즘이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사천음식 전문점 ‘시추안하우스’도 그중 하나다. ‘매드포갈릭’으로 유명한 썬앳푸드가 운영하는 브랜드. 시그니처 메뉴 ‘비프마라탕’을 비롯해 마라 관련 상품 매출이 지난해 이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올 5월에는 판교에 신규 매장을 내고 ‘해산물 마라샹궈’ 신메뉴도 선보이는 등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 중국에서 들여온 훠궈 전문점 ‘하이디라오’도 2014년 서울 명동 1호점을 시작으로 강남, 홍대, 건대, 대학로, 영등포 등지에서 성업 중이다.

치킨 프랜차이즈도 마라 열풍에 합류했다. bhc는 최근 마라샹궈를 치킨에 접목한 신메뉴 ‘마라칸치킨’을 새로 내놨다. BBQ도 지난 1월 치킨에 마라소스를 입힌 ‘마라핫치킨’을, 걸작떡볶이치킨은 ‘마라떡볶이’ 판매를 시작했다. 치킨매니아는 최근 마라치킨 신제품 이름을 ‘장첸치킨’으로 짓고 마케팅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편의점에서도 마라가 난리다. CU는 지난해 12월 선보인 ‘마라탕면’이 효자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별다른 광고 없이도 3월까지 약 3개월 누적 판매량이 15만개를 넘어섰다. 최근에는 더 폭발적인 판매세를 구가한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에만 또 15만개가 넘게 팔려 나갔다. CU 브랜드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마라 인기 트렌드에 맞춰 지난 3월 ‘마라볶음면’을 내놓는 등 마라 관련 제품군을 10종으로 늘렸다. GS리테일 편의점 GS25는 ‘마라우육면’과 ‘마라땅콩’ 2종을 판매한다.

▶마라 인기의 배경은

▷에스닉푸드 열풍·중국인 증가 ‘한몫’

마라가 최근 갑자기 인기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2년 전 베트남 음식, 또 최근 대만 음식 열풍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에스닉푸드’에 대한 호기심이다.

에스닉푸드는 민족을 뜻하는 ‘에스닉(ethnic)’과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의 합성어로 독특하고 이국적인 느낌이 강한 지역 음식을 일컫는다. 한국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현지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에 쉽게 접하지 못하던 본토의 매운맛이 입맛을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체류 중국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에스닉푸드 인기와 맞닿아 있다. 공급과 수요 두 측면 모두에 해당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서울에 사는 중국인은 모두 18만6963명이다. 서울 거주 전체 외국인(27만5468명) 3명 중 2명은 중국인이라는 얘기다. 중국인 밀집지역인 서울 대림동, 건대입구역 근처, 동작구에 마라 음식점이 몰려 있는 사실도 자연스럽다. 라화쿵부는 2010년 대림의 작은 음식점에서 출발했고 대표도 중국계 한국인이다. 중국인 가맹점주 비중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백화점 식품관 등에 입점해 있는 브랜드 ‘왕푸징마라탕’ 역시 직원 대부분이 중국인이나 화교다.

마라 열풍을 이끄는 젊은 세대에서는 중국과의 활발한 학생 교류를 인기 배경으로 꼽기도 한다. 일주일에 최소 1번 이상은 마라탕을 먹는다는 직장인 황규연 씨는 “여자 친구가 과거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1년 갔다 왔다.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자꾸 먹자고 해 따라다니다 나도 마라에 중독됐다.

요새는 집에서도 마라 음식을 만들어 먹을 정도의 ‘덕후’가 됐다”고 설명했다.

마라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익숙해진 마라탕에 비해 마라샹궈나 마라롱샤 등 다른 음식의 인기는 이제 시작이다. 또 대림, 건대입구 등 특정 지역을 넘어 서울과 다른 지방으로까지 인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08호 (2019.05.15~2019.05.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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